알프스 – 문화적 의미

늘 자연의 절대적인 힘이 지배적이었던, 지중해와 북 유럽 사이에 위치한 이 거대한 알프스 산맥은 오랫동안 아주 고립적인 다양한 산악문화권들을 형성해 왔다. 구석기 시대 때부터 방랑생활을 하는 사냥꾼들이 알프스 고지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지배력과 상업을 확충시키기 위해 고지대에 길을 뚫었으며, 많은 통로들은 여전히 이용되고 있다. 또한 상인으로서의 켈트족들도 위험한 고지대의 고개들을 넘나들면서 여러 상업로들을 만들어 냈다. 수세기 동안 그러한 지역은 한니발, 세사 아우구스투스, 아티라 훈, 챠레마그네와 나폴레옹의 군대들이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지대의 고개들 사이에 웅장하게 솟아 있는 알파인 봉우리들은 1700년대까지 용과 악마들의 거처로 여겨져 왔다. 기록에 의하면 수세기 동안 루세르네(Lucerne) 시의회는 악마 정신의 본가로 자자했던 피라투스(Pilatus) 산을 법령으로 오르지 못하게 금지시키기도 했다. 1680년에는 샤모니를 굽어보며 흐르는 몇몇 빙하들의 초자연적인 힘을 몰아내기 위해 안시(Annecy)의 주교를 샤모니에 초대하기도 했다. 자연히 이러한 전설과 자연적인 위협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고산으로의 여행을 방해했던 것이다.

1700년대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호기심이 지리학자와 식물학자들을 고지대로 유혹하여 고지대의 단절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고산지대의 전경을 흥미롭게 기술한 잰-쟉크 룻쇼와 19세기 낭만주의 시인들은 사람들을 부추겨 알프스로 향하게 했다. 프랑스인 미셜-가부리엘 파카드와 쟈크 발마에 의한 1786년의 몽블랑(서부 유럽의 최고봉) 등정은 등산의 개척시대를 선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등산과 스키를 스포츠로 대중화시킨 이는 영국인들이었다. 1865년에 에드워드 윔퍼는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마터호른을 올랐으며, 1922년에 아놀드 런은 뮤렌(Murren)에서 스키 회전 활강 경기를 개최하기에 이르렀으며, 알프스의 산악도시들은 세계 최대의 동계 휴양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산비탈과 메마른 토지, 그리고 긴긴 겨울 등으로 인해 산간 주민들은 주로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포도밭이나 과수원, 곡물농사 뿐만 아니라 낙농업과 제재업이 주 수입원을 이뤘다.

많은 지역에서 풍부한 산림은 아름다운 샤렛(가옥)을 짓고 종교적인 형상들과 인간들 삶에 유용한 건조물들을 조각하는데 이용되었다. 로마 시대 때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가축들이 알프스 고지대를 드나들었다. 고대부터 고산 목초지로의 출발에 앞서 많은 가축들은 축복으로 신성시 되었으며, 그들이 돌아올 땐 방울과 야생화로 장식되었다.

오늘날 산골 경제의 주수입원은 관광산업이다. 알프스 전역의 휴양지와 건강 센터, 그리고 하이커들의 숙박업소들은 관광객들을 언제나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각 지역의 전통양식들은 외부문화의 유입을 꺼리고 있다. 한 예로 얼마까지만 해도 알프스 최고의 산악도시 샤모니에 맥도날드가 아무리 개점하려 해도 하지 못한 일 등. 자신들만의 문화색이 짙은 각 지역들은 정치적인 문제 등은 염두에 두지 않고 그 자신들만의 독특한 장점들을 개발시키면서 뛰어난 관광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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